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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태풍 난리통 겪은 동해안 이재민들…'서러운' 명절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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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에 설 명절까지…산불 피해 이재민 "암울하다"
산불로 숨진 김씨의 유족 "올해 쥐띠인 동생 더 생각나"
불편한 생활 속 태풍 이재민들 "오겠다는 자녀 만류했다"

박만호(73) 할아버지가 예전에 살던 집을 찍어둔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박만호(73) 할아버지가 예전에 살던 집을 찍어둔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는 최대의 명절, 설날. "즐거운 설 연휴 보내세요"라는 흔한 안부 인사도 건네기 힘든 이들이 있다. 바로 지난해 산불과 태풍으로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이다.

지난해 4월 발생한 강원 동해안 산불로 조립식 주택에서 추석 연휴를 보냈던 피해 이재민들은 이번 명절을 앞두고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해를 넘긴 데다 두 번째 연휴까지 임시 주택에서 머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탓이다.

속초 장천마을에서 만난 이재민 박만호(73) 할아버지는 "설 전에는 집이 마련돼 입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임시컨테이너에서 명절을 맞이하게 돼 조상님께도 죄스럽고, 마음 한쪽에 잔뜩 검은 구름이 낀 심정"이라며 "차례를 지내기에 공간이 좁아 추석 때처럼 산소에 가서 성묘만 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박 할아버지는 "설 명절은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다짐하는 희망찬 날이 돼야 하는데 아직도 보상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고 있어 너무 암울하다"며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고생스러운 명절을 보낸다는 건 정말 화가 치미는 노릇이야"라고 성토했다.

산불 당시 자신을 구하려다 숨진 동생을 그리워 하며 눈물 짓고 있는 김순점(68) 할머니 모습. (사진=유선희 기자)

산불 당시 자신을 구하려다 숨진 동생을 그리워 하며 눈물 짓고 있는 김순점(68) 할머니 모습. (사진=유선희 기자)
온 가족들이 한 데 모여 어울리는 명절이 유난히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재민도 있다. 지난 산불 당시 가족을 구하고 숨진 김모(당시 60)씨의 유족들은 여전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이재민 김순점(68) 할머니는 "저희는 4남매로 명절 때마다 늘 다 같이 모였던 터라 세상을 떠난 동생이 더 생각난다"며 "동생이 올해 61살로 쥐띠인데, 올해는 경자년 '쥐띠의 해'여서 또 눈물이 쏟아진다"며 울먹였다.

김 할머니는 "사건 이후 이명이 들리는 등 이상 증세가 있어 정신과 약을 먹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도 당시에 동생이 저를 구하러 왔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집과 생계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잃었는데 명절이 뭐가 특별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동생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훔치는 김 할머니의 시계는 지난해 4월 4일에서 그대로 멈춰있는 듯했다. 김 할머니는 산불 당시 연기를 많이 마신 탓에 폐활량에 필요한 약과 정신과 약 등을 먹으며 하루하루 힘겹게 지내고 있다.

무엇보다 산불 피해 이재민들은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피해액 배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미탁' 태풍으로 보금자리를 잃고 임시주택에서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송수학 할아버지 부부. (사진=전영래 기자)

'미탁' 태풍으로 보금자리를 잃고 임시주택에서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송수학 할아버지 부부. (사진=전영래 기자)
이런 가운데 지난해 10월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온 마을이 쑥대밭으로 변한 삼척에서는 639세대 1만 167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현재 35동의 임시주택에서 이재민들이 머물고 있다.

지난 22일 취재진이 만난 신남마을 이재민들 얼굴에서는 명절 분위기는커녕 집을 잃은 서러움과 고통이 가득 묻어났다.

이재민 이양우(67) 할아버지는 "난방은 그럭저럭하지만 사는 게 말이 아니다. 아내랑 둘이 생활하는데 생활물품을 배치할 공간도 부족하다. 어떻게 명절을 여기서 나겠나. 자식들이 온다고 하는 것을 오지 말라고 했다. 손주들 보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잠을 잘 곳도 없다"고 불평을 쏟아냈다.

7평 남짓한 조립식 주택에서 불편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재민들은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마을 이재민 중 최고령자인 송수학(87) 할아버지는 "새집을 보고 죽을는지 모르겠다. 컨테이너 안에 공기가 탁해서 자고 일어나면 목이 아픈데, 그래도 공기가 너무 나빠 추워도 문을 열어 둔다. 그러니 감기가 떨어지질 않는다"며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고통스럽고 불편한데도, 시에서는 집을 지을 터도 닦지 못하고 있어 정말 답답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산불과 가을 태풍으로 '가혹'한 지난 한 해를 보냈던 동해안 이재민들은 여전히 열악한 시설에서 머물며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설 명절을 보내고 있다.

조립식 주택에서 머무는 한 이재민이 바깥에 나와 빨래를 하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조립식 주택에서 머무는 한 이재민이 바깥에 나와 빨래를 하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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